누구나 한번쯤은 그런 경험이 있을 거다.
우연히 친구의 친구로 알게 되었는데 그 친구보다 더 친해지는 경우.
책을 읽다보면 같은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읽고 있던 책으로 인해 알게 되었는데 그 책보다 더 마음에 드는 경우.
나스메 소세키의 행인이 그렇다.
말이 필요없을 정도의, 소위 일본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라지만
내겐 특별한 인상이 없다.
언젠가 그의 단편을 읽은 것 같기도 한데 정말 읽었는지 자신은 없다.
아무 것도 기억나는 게 없는 걸 보면 안 읽은 것과 마찬가지리라.
사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같은 소설은 워낙 유명한 작품인지라
안읽고도 읽은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
그들은 한 줄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는 책을 읽던 중
누가 언급했던가...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어쨌든 어느 부분에선가 '행인'이 머리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면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 만나게 되는 것처럼
만나야 할 책도 언젠가 만나게 되는 게 아닐까?
일단 표지부터 너무 마음에 든다.
아무 무늬없는 하얀 표지.
좌측 상단에 제목과 저자
그리고 우측 하단에 세로로 두줄.
그게 전부다.
1900년대 초반 아사히신문에 연재된 소설.
100년 전에 쓰여진 소설이란 것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모던하다.
줄거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요약하면 형과 나, 그리고 형수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거리,
그것을 통찰하고 묘사하는 예리함,
행간에 팽팽하게 느껴지는 긴장감.
그러면서도 담백함과 품위를 잃지 않는 깊이.
원작도 원작이지만 번역도 훌륭한 것 같다.
아무래도 이번 겨울엔 나쓰메 소세키의 다른 작품들을 섭렵해야겠다.
먼저 마음부터.
물론, 행인도 다시 한번 더 읽어야겠다. 언젠가^^
다음은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들.
"넌 메러디스라는 사람을 아니?"
"그는 자신의 서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어.
나는 여자의 용모에 만족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여자의 몸에 만족하는 사람을 봐도 부럽다.
나는 아무래도 여자의 영靈이나 혼魂, 이를테면 정신sprit을 획득하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다. 그래서 내겐 도무지 연애사건이 생기지 않는다."
"메러디스라는 사람은 평생 독신으로 지냈습니까?'
"그건 알 수 없어. 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느냐?
하지만 지로, 내가 영이나 혼, 이를테면 정신도 획득하지 못한 여자와 결혼한 것만은 분명해."
"자넨 산을 불러들일 남자다. 불러들여 오지 않으면 화낼 남자다.
발을 동동 구르며 분해할 남자다. 그리고 산을 나쁘게 비판하는 데만 골몰할 남자다.
어째서 산 쪽으로 걸어가지 않는가?"
"만약 그쪽이 이쪽으로 와야 할 의무가 있다면 어쩌겠나?"
"그쪽에 의무가 있건 없건, 이쪽에 필요가 있다면 이쪽에서 가야지."
"의무가 없는 곳에 필요가 있을 리 없지."
"그럼 행복을 위해 가게나. 필요 때문에 가고 싶지 않다면."
나쓰메 소세키_행인_문학과지성사_2001
ps.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대산세계문학총서들 챙겨봐야겠다.



최근 덧글